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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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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11 12:52 조회1,7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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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항 : 2008년 무안문화원에서 발간한 작품집 <무안 수필 시선>에 발표한 수필 4편중 한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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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임춘식 한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 물


 몇 해 전에 사우디 해외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말고 돌아 온 친구 녀석의 말이 오늘 따라 문득 생각이 난다. 친구의 말은 해외 공사장에서 제일 그리운 것이 시원한 물 한 모금이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물이 귀한 나라면 그렇게나 물을 그리워 했을까 했을 뿐 물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야~ 이 새끼야, 사우디에서는 물이 휘발유 보다 더 비싸야”

 “웃기네, 아무렴 그럴 리가”


휘발유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당연히 신화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이 들렸지만 너무나 과장된 표현이려니 하고 웃어 넘겼던 일이 갑자기 회상된 것이다.


그런데 웬걸, 우리 집도 최근에 배달되는 생수를 사 마시며 살고 있다. 믿을 수 있는 물인지는 알바 아니지만 돈 주고 사 먹는 물이기에 깨끗하고 좋은 물이라는 사실만을 믿고 있을 뿐이다. 하기야 물 한 말에 거금 5.000원을 주고 배달되는 물을 마시며 사는 나는 무척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몇 년 전에 사우디에서는 물 값이 휘발유 값보다 더 비싸다고 이야기 해 주던 친구를 반신반의했던 내 모습이 오늘 따라 부끄럽게만 느껴진다. 언제까지 마시는 물을 사 마셔야 하는가. 아무튼 우리 집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얼른 가시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집 안에 있는 우물을 마시다가도 수돗물을 마시면 부자가 된 듯 으슥해 했었고 모처럼 도회지의 고모 집에만 가면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자랑삼아 물을 마시며 수돗가에서만 논다고 고모에게 야단맞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어린 시절의 시골 집 뜰에 깊은 우물이 있었다. 물맛도 좋고 물이 차가 와서 옆집에서까지도 자주 사용하곤 했던 우물이다.


누님이 물도 긷고 빨래도 하고 보리쌀도 씻고 배추도 다듬던 우물가, 여름이면 등물을 해 주던 누님, 그 누님이 도회지로 시집을 간 뒤에도 우리 집 우물가에서는 저녁때만 되면 동네 처녀들이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로 찾아 들었던 유년시절이 잊혀 지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시골집 우물은 이제 사용치 않아 쓰레기통으로 변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우물 쓰레기통이 된 것이다. 


우리 집 우물처럼 동네방네 우물들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펌프가 등장하고부터 일 것이다. 우물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힘이 많이 들었고 우물이 훤히 보여 청결상태도 쉽게 알 수가 있었는데 동네에서 속칭 부자로 손꼽히는 집들이 우물 안에다 수동식 펌프를 묻기 시작하면서부터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릴 필요도 없게 되었고 더구나 울안에 있으니 편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 우리 집도 펌프를 뒤늦게 놓았고 그 이듬해 작은 누나까지 고모집 근처로 시집을 가버렸다.


그때부터 한 집 두 집 펌프를 놓기 시작하자 온 동네 모두 펌프로 바뀌었고 자연 우물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시골 산골에도 우물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을 얕게 막아 우물로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어져버렸다. 이제「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날 일」도 없어졌다. 우물이 사라지면서 물동이도 사라졌고 두레박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처녀들의 건강한 웃음 꽃이 피고 온 동네 소문의 근원이었던 우물이 없어지고 상쾌한 발동기 소리를 내며 전기 모터가 끌어 올리는 상수도도 집집마다 이제 없는 집이 없다. 시골의 모습이 이만저만 변한 것이 아니다.


하기야 전기밥솥이 등장하며 여자들의 일손을 크게 절감한 것처럼 펌프 상수도 보급으로 가정주부들의 일손은 크게 줄었지만 깨끗한 물, 소독된 물을 마시기 위해 어쨌든 상수도가 설치되어 우리 집 추억의 우물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태어났고 유년시절을 즐겁게 보냈던 시골의 맛을 잊게 된 것이 서운할 뿐이다.


시골 집 뜰의 우물이 한량없이 그립다. 우물대신 상수도에서 펑펑 쏟아지는 물, 그 물이 깨끗하고 좋은 물이라고 믿고 마시고 있는데 그나마 그냥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다고들 하니 어찌된 영문인가? 어쨌든 어린 시절의 시골 집 뜰의 아담한 우물이 마냥 그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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