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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느 샐러리맨의 ‘네 가지 大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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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11 12:54 조회1,7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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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샐러리맨의 ‘네 가지 大罪’


김낙희

 당시 서강대 철학 2년

 현재 제일기획 전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25년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다짐했던 각오와 의지는 빛이 바랜 채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전락한 것 같아 유쾌하지가 않다. 특히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대학 시절의 큰 뜻은 온데 간데 없고 현실을 쫓아 허겁지겁 살고 있는 모습이 창피하기까지 했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입사시험에 합격하여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인사하러 갔을 때 “적당히 타협하고 중간만 하면 된다”던 어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아마도 의식이 강하고 유난히 반항적이던 내 캠퍼스 이미지로는 직장생활을 오래 못하고 쫓겨날 것 같아 한마디 해준 덕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회사에 다니는 걸 보면 오히려 남들보다 더 적당히 타협하는 재주가 많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다. 또한 이렇게 한 곳에서 오래 동안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나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주위 선후배 동료들의 도움과 무엇보다 가족의 후원이 컸다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자랑스럽던 기억보다는 후회스러운 일이 훨씬 더 많다. 어쩌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방향감각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감이 없지 않다.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주위도 살피면서 천천히 살아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 없이 뛰다 보니 어느새 세월만 후딱 가 버리고 남은 것이 별로 없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나 자신 깊은 성찰의 시간도 자주 갖진 못했지만 내가 뭔가 잘못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은 항상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생활해 오면서 많은 잘못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몇 가지 반성하는 의미에서 고백하려고 한다.


첫째는 부화뇌동죄다. 열심히 남들 따라 하면서 살아온 느낌이다. 옆집이 차를 바꾸면 나도 바꾸고 아는 친구가 큰 아파트로 이사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아파트 평수를 넓혀서 이사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계절이 바뀌면 멀쩡한 옷이 많이 있는데도 유행을 따라 새 옷을 사 입었고 과다한 사교육비와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우리 애들만큼은 옆집을 따라 과외 공부를 시켰다. 친구들이 증권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면 괜히 배가 아파 못 견디고 급기야는 따라하다가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


식사할 때나 찻집에서 혼자 앉아 있으면 왠지 쑥스럽고 외톨이가 된 것 같아 좌불안석이었을 때가 많았다. 이 얼마나 남을 의식하며, 눈치를 보며, 나를 잊고 살았는가.


둘째는 환상유포죄다. 광고를 해오면서 제품과 기업을 과대 포장시키고 나아가 호화생활과 과소비를 조장해온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광고는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오일쇼크와 IMF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기보다는 소비를 부추기고 멋있는 생활의 모습만을 담아 광고를 했으니 과대망상을 하게 한 죄 또한 크다고 아니 할 수 없다. 후배들에게 광고의 미래 비전에 대해서 잔뜩 꿈을 심어 주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실의와 회의에 빠져 얼마나 술을 마셔 댔던가. 그뿐인가. 광고주에게도 이렇게 하면 제품이 잘 팔리고 이미지도 확 좋아진다고 설득은 했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반성을 해본다.


셋째는 진상외면죄다. 보고도 못 본 듯 듣고도 못 들은 듯 벙어리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너무 잘 지켰던 것은 아닌가. 언론 통폐합이나 대형 권력형 비리사건 등 정치 · 사회적으로 터져 나오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나왔다. 심지어 모교의 학내 문제로 교수들간에 치고 박을 때에도 점잖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기도 했으며 홈리스들이 길거리에서 구걸할 때에도 그냥 지나쳐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어느새 몸에 밴 것 같고 나한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으면 무관심해져 버린 것이다. 오히려 제 몫을 크게 하려고 공치사를 하면서 세상을 향해 자신을 알아 달라는 몸짓을 하지는 않았는가. 봉사하고 남을 도우면서 살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 실천한 게 없으니 부끄럽기 한량없다.


넷째는 과민반응죄다. 나는 너무 빨리 흥분하고 너무 쉽게 실망하는 편이다. 박찬호가 우승하기를 기대하고 박세리가 미 LPGA 대회에서 싹쓸이하기를 기대했다가 어긋나면 금세 실망한다.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군다나 잊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도 너무 빨리 잊어 버리는 편이다. 소위 냄비 근성이 나도 모르게 몸에 밴 것 같다. 나는 매우 급한 성미로 빨리빨리 하다가 손해를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이분법에 매우 익숙해서 있다. 나와 생각이 같은가, 아니면 다른가로 편가르기 식 피아 구별을 하기도 하였으며 혹이 아니면 백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조직이나 모임에서 출신 지역이나 출신 학교를 따져 보는 습관이 생겼고 경청하기보다는 내 주관, 내 생각으로 재단하고 안 맞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교만함이 생겼다. 어느새 OX 문화에 익숙해져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헤아려 보는 습관이 없어진 것이다. 


보잘것없는 한 직장인의 고백치고는 조금 거창한 것 같지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 보면 갑자기 자신이 초라해진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어 앞으로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던 차에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적어 본 고백이다.


이제부터 나의 색깔과 목소리를 만들어 나만의 정체성(正體性)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고 싶다. 나라와 사회에 봉사하고 섬기면서 그 동안 소홀히 했던 가족과 주변 친지들에게 잘 해야겠다는 소박한 결심을 다시 해 본다.


 [출처] 71동지회편, 나의 청춘 나의 조국, 71동지회 30년 기념문집, 서울: 나남출판, 2001, pp. 27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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